'너의 이름은' - 과연 남성 영웅물인가?




열심히 써놓고 보니 내가 봐도 뭔소린지 모르겠다.




이래저래 핫한 작품인데 개인적으로도 보기 전에 들은 말도 많이 있었고 하니 이래저래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작품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보면서 꽤나 감독을 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트윈 주인공 체제인 것처럼 시작해서 결국 작품의 중심은 남주인공 '타키'쪽으로 옮겨온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죠.


.........작품 중간까진요.


그렇다면 다 보고 남은 감정은 무엇인가?


좋게 보면: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나쁘게 보면: 그래서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스텝롤이 내려올 때까지는 감동적이었으나 극장을 나오면서 느끼는 참을 수 없는 밍숭맹숭함.
그 감정의 이유를 좀 생각해 봤는데 결국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이 작품엔 '갈등'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갈등이 될 만한 요소는 굉장히 많이 깔아놓고 시작하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모든 요소를 의도적으로 잘라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이 작품을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파악하여 '평범한 소년이 사연있는 소녀를 만나 그녀를 구원하고 영웅이 되어 댓가로 그녀를 획득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보이미트걸 소년영웅서사'라고 하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타키에게는 영웅서사의 영웅이 가져야 할 요소들이 모두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웅서사의 영웅이라고 한다면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천부적이고 보통은 운명이나 혈통으로 표현되는 당위성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영웅이 되는 존재,
또 하나는 수많은 갈등과 위기를 돌파하고 그 댓가로 무언가를 잃거나 그를 통해서 성장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영웅이 되는 존재

타키는 그 둘 중 어느 하나가 되기엔 상당히 약한 존재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물론 타키가 미츠하의 몸을 통해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 사실이지만 타키가 그것을 위해 어떤 갈등을 겪은 것도 아니며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다고 보기도 어렵거니와 결정적으로 마을을 구원하는 가장 중요한 장면을 가져간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은 마을 사람들이 멸망하느냐 구원받느냐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시점을 '마을의 구원'이 아니라 '황혼의 기적'으로 돌리는 연출을 통해서 갈등의 해소와 등장인물의 성장 등의 요소에는 본질적으로 관심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연출만 따지고 본다면 마을 사람들과 미츠하를 구원한 건 타키라기보다는 초현실적인 '기적', 작중에서 지겹게 언급하는 '무스비'라고 봐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다시 미츠하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사실상 갈등 요소랄 게 전무한 타키에 비해서 미츠하는 갈등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개인적인 발전의 여지 없이 '그저그런 시골 여자의 삶'을 강요(물론 대놓고 그런 요소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낙후된 시골이라는 환경 그 자체의 측면에서)하는 마을, 전통을 강요하는 고리타분한 가문, 사별한 어머니와 냉담하고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자길 왕따시키는 마을 아이들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이 모든 갈등의 해결 과정을 좀 의도적이다 싶을 정도로 서사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부분은 중요하게 묘사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두루뭉실하게 넘겨서 상당히 놀랐으나 나중에 생각해 보면 이게 바로 감독이 의도한 바로 그 지점이라는 느낌이었죠.

결국 미츠하를 둘러싼 갈등들은 표면적으로 해소되었으나 그건 미츠하의 공도, 타키의 공도 아니라 운석이 마을에 떨어졌다는 '기적'때문일 뿐.
결국 타키는 목표를 이루었으나 그 과정 중에 그를 스처간 일들을 되새겨 보면 심대한 갈등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걸어야 하는 중대한 무언가도 없이 미츠하 할머니의 말을 빌어 정말로 '하룻밤 꿈을 꾼 것 같은'경험.

결국 감독이 잡고 싶었던 건 인물과 사건과 갈등이 만들어내는 '서사'가 아니라 있을 수 없는 기적으로 만나게 된 두 남녀가 서로를 만나고 싶어하는 그 아련한 감정 '자체'.
실체가 있는 듯하면서도 없는 그 '감성'에 집중하기 위해서 고전적인 서사, 즉 드라마 요소를 의도적으로 덜어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갈등'이 없는 서사 구조 속에서 어떤 사회적 비평은 굉장히 메타적인 비평이 아니면 성립하기 힘들며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페미니즘적 시선은 작품의 내적 요소 보다는 굉장히 메타적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지 않나......하는 것이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시도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놀랄 정도로 영리한 방향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인 히트를 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속 5cm'를 보면서도 느꼈던 그 미묘한 공허함,
인물의 갈등과 드라마를 배재하고 의도적으로 원하는 감정만을 남기는 기법이 가져오는 공허함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는 앞으로 감독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덧붙여서 페미니즘적 사이드에서 논란이 되었던 몇 가지 씬들을 되짚어 보면

미츠하의 첫 등장 씬: 솔직히 빼박칸트 노린 씬 맞죠. 에바 슈트 야하게 디자인하라고 했다는 일화나 다를 바 없을듯(........)

가슴주무르기: 사실 이런 요소 자체는 되게 클리셰인데 이에 대응되는 미츠하 측의 요소가 돈 마구 쓰기라는 게......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동아시아의 '남녀가 바뀌면 뭘 할까?'에 대한 스탠다드한 인식이 딱 이렇다는 느낌이라 씁쓸한 점은 있었습니다.

요조숙녀 미츠하: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이 다른데 작중에서 미츠하가 보여주는 요조숙녀적 모습은 해석에 따라서는 단순히 '여자라서'라기보다는 '깡촌의 전통을 강조하는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무스비 타령을 신나게 들으며 자란' 성장환경의 영향이 더 크지 않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by 푸칡 | 2017/01/05 23:57 | 기타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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